[다큐] 20대는 다 이렇게 사나요? 제일 싼 컵라면으로 매일 끼니를 때우는 20대 현실

 

컵라면과 ‘네카라쿠배’, 그 아득한 거리감에 대하여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주한 ‘공산품’의 서사

 

오늘도 청춘의 자취방 불은 켜지지 않는다.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스위치 버튼을 우산으로 더듬어 켜야 하는 보증금 몇백짜리 방. 그곳의 냉장고는 비어 있고, 한 구석에는 대용량 컵라면과 편의점 즉석밥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한 끼 만 원이 넘어가는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장염을 앓아가며 2,500원짜리 학식 햄버거로 배를 채우는 이들. 이것은 어느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의 지독하리만큼 투명한 현실이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가 조명한 청년들의 삶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낡은 위로가 얼마나 무책임한 방임이었는지를 서늘하게 폭로한다. 그들의 삶에는 일시정지 버튼이 없다. 성인이 된 이후 단 한 순간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는 청년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돈을 쓰지 못하고, 돈을 버는 데만 시간을 씁니다.” 학원비, 자격증 접수비, 심지어 대외 활동을 위한 교통비까지 모든 것이 비용인 세상에서 청년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공부할 시간을 팔아 노동을 한다.

이들이 마주한 사회는 냉혹함을 넘어 잔인하다. 남들이 배고픈 시간에 페달을 밟아야 돈이 되는 배달 청년은 입주민들이 시킨 음식을 들고 아파트 입구에서 제지당한다. “오토바이는 밖에 세우고 걸어가세요.” 그 서러운 선포 앞에서 청년들은 사회적 계층의 벽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가혹한 레이스의 출발선이 이미 다르게 그어져 있다는 점이다. 부유한 이들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유학을 가고 억대 학비의 로스쿨을 ‘본교 우대’라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통해 통과할 때, 하위 계층의 청년들은 다음 달 월세를 내고 나면 통장에 남는 단돈 몇천 원을 보며 절망을 배운다. 가난은 이제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를 넘어, 불행한 가정 환경, 혼자 아플 때 짜내야 하는 물수건의 외로움, 그리고 ‘선택지의 소멸’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대학 입시와 취업이 자아실현의 무대라면, 이들에게는 탈출을 위한 단 하나의 밧줄이자 숨 막히는 통행권일 뿐이다.

 

그 결과 청년들은 스스로를 ‘공산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규격화된 스펙을 갖추기 위해 학벌을 갈고닦고, 자격증을 벽돌처럼 쌓으며, 심지어 외모까지 스펙으로 관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형식상 블라인드’라는 허울 좋은 간판 뒤에서 출신 학교를 교묘하게 유추해 채용한다. 상처받은 청년들이 마지막으로 도피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전하게 시험으로 평가받는’ 공무원 시험과 고시촌이다. 그러나 그 안전지대마저도 새벽 5시의 피로와 공황장애라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네카라쿠배당토’는 이제 꿈의 직장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어플리케이션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저 남들만큼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토록 사치스러운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노력이나 해라”라는 훈수는 격려가 아닌 모욕이다.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적 장벽을 매일 온몸으로 들이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청춘들의 눈물을 '성장통'이라는 단어로 포장할 것인가. 연애와 결혼, 출산은 물론이고 당장의 미래마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이 절망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서울이라는 괴물 같은 도시에 진입하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는 이 무한 경쟁의 룰을 깨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20대들이 아득바득 살지 않아도, 컵라면이 아닌 따뜻한 밥 한 끼를 편하게 먹으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 노력이 배신당하지 않고, 출발선이 달라도 완주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회복되는 사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춘을 향한 어설픈 연민이 아니라, 이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바꾸겠다는 기성사회의 처절한 반성과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