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닻과 뇌의 결핍: 20만 년 전 수렵채집인이 조율하는 현대 자본주의
현대 자본주의는 외견상 고도로 발달한 수학적 모델과 첨단 금융 공학 위에 세워진 합리성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경제 활동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의 경제적 의사결정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은 대물림 된다 돈의 진실>이 던진 묵직한 화두는 명확하다. 인간은 돈을 갈망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정작 돈을 올바르게 다루는 메커니즘은 장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뇌과학과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돈의 진실은, 현대 자본주의가 마주한 불평등의 심화가 단순한 정책의 실패를 넘어 인류의 진화적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석기시대의 뇌로 움직이는 디지털 자본주의
인류의 뇌는 약 20만 년 전 사바나 초원을 누비던 수렵채집인 시절에 최적화되어 동결되었다. 당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과제는 눈앞에 보이는 고기(사냥감)를 즉시 소비하는 것이었다. 고기는 내버려 두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보일 때마다 사냥하고 배를 채우는 ‘충동성’과 ‘끝없는 갈망’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현대인의 뇌는 이 ‘고기’를 다루던 메커니즘 그대로 ‘돈’을 처리한다. 돈을 얻었을 때 쾌락 중추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 활성화되며 도파민이 쏟아지는 현상은, 뇌가 돈을 생존에 필수적인 음식이나 섹스와 동일 선상에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돈은 고기와 달리 썩지 않으며, 무한대로 축적할 수 있고, 스스로 이자를 낳으며 증식한다는 점이다. 진화의 브레이크가 없는 인류의 뇌는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아도 만족이라는 신호를 보내지 못한 채 끊임없이 탐욕의 페달을 밟게 된다.
합리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환상
전통 경제학은 인간이 모든 정보를 취합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합리적 주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의 거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의 ‘독재자 게임’이나 Amos Tversky와 함께 정립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는 이 가정을 처참히 무너뜨린다.
인간은 물건의 가치를 독립적으로 평가하지 못한다. 자신의 사회보장번호 뒷자리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임의의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뇌는 그 숫자에 ‘닻(Anchor)’을 내리고 이후의 가격 가치를 왜곡하여 판단한다. 시스템 1(직관적·무의식적 사고)이 지배하는 인간의 뇌는 마케팅과 자본이 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부와 가난이 바꾸는 뇌의 구조와 공감의 상실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부의 비대칭성이 인간의 생물학적·심리적 훼손을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첫째, 부의 축적은 공감 세포를 마비시킨다. 심리학자 폴 피프(Paul Piff) 등의 연구에 따르면, 상류층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떨어지고 규칙을 위반하는 경향(비싼 차일수록 정지선을 위반하는 현상)이 높게 나타난다. 권력과 자원이 풍부해질수록 타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뇌의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 체계 활성도가 낮아지고 사회적 민감성이 둔화되는 것이다. 이는 부자들의 확증 편향과 ‘갑질’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배경이 된다.
둘째, 가난은 인지 자원을 고갈시킨다. 가난은 단순한 물질적 부족이 아니라 뇌의 대역폭(Bandwidth)을 훔쳐 가는 치명적인 결핍이다. 행동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의 연구가 보여주듯,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결핍 상태의 인간은 뇌의 모든 에너지를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쏟아붓는다. 이로 인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는데, 이는 IQ 13점이 떨어진 것과 같은 일시적 지능 저하를 유반한다. 가난한 이들이 종종 비합리적인 금융 선택을 하는 것은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가난이라는 상황이 뇌를 과부하 상태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빈곤의 스트레스 뇌파(EEG)가 성장기 아동의 뇌 발달을 저해하여 '가난의 생물학적 대물림'을 고착화한다는 사실이다.
불공평에 대한 혐오: 인류가 남겨둔 진화적 브레이크
그렇다면 가파른 부의 피라미드 속에서 인류는 각자도생의 파멸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가? 다행히 인류의 유전자에는 또 하나의 강력한 브레이크가 새겨져 있다. 바로 '상호 호혜성'과 '불공평에 대한 거부감'이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9:1이라는 모욕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 인간은 1이라는 실리적 이득을 취하는 대신 돈을 찢어버리는(거부하는) 선택을 한다. 이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인간이 썩은 음식이나 오물을 보았을 때 격렬한 거부감을 느끼는 섬엽(Insula)이다. 인류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때 생리적 역겨움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홀로 생존할 수 없었던 원시 사회에서 독점과 독재를 일삼는 개체를 처벌하고,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며 연대했던 개체들이 인류의 조상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탐욕의 경제학에서 공감의 경제학으로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지르면서 자본주의 자체의 메커니즘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r > g$). 노동의 가치가 자본의 증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상은 뇌과학적으로 대다수의 인류를 '결핍의 함정'에 빠뜨려 사회 전체의 인지적 번영을 가로막는다. 불평등의 심화는 살인율, 중독률을 높이며 사회적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본을 붕괴시킨다.
인간은 완벽하게 평등한 유토피아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균형을 상실한 불평등에는 본능적인 역겨움을 느낀다. 자본주의가 폭주하는 시스템을 멈추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탐욕을 자극하는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인류의 또 다른 본성인 '공정과 나눔의 미덕'을 제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가난이 아이들의 뇌를 빈곤하게 만들지 않도록 기본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과도한 부의 독점이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세와 분배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 그것이 20만 년 전의 뇌를 가지고 최첨단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인류 최고의 희망과 시스템의 브레이크는, 여전히 공정을 갈망하는 우리의 머릿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