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갚아도,갚아도 없어지지 않는 빚의 비밀, 금융의 덫

 

빚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 우리는 왜 '부채의 노예'가 되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물가는 풀리지 않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흔히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물가 상승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넘칠 때만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파트 공급이 쏟아져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짜장면 가격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공급 과잉이나 수요 폭증과 무관하게 수백 배가 올랐다. 이 거대한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미시적인 거래가 아닌, 금융 자본주의의 가장 거대하고 은밀한 메커니즘, 바로 ‘통화량 팽창(Monetary Expansion)’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직면한 물가 상승의 정체는 물건의 가치가 오른 것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처참하게 추락한 결과다.

종이 수표 뒤에 숨겨진 잔인한 마술: 부분지급준비제도

그렇다면 시중의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나왔을까? 많은 이들이 한국은행이나 조폐공사가 잉크를 묻혀 찍어낸 화폐를 떠올리지만, 이는 전체 통화량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대 금융을 움직이는 진짜 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숫자, 즉 은행의 대출을 통해 무(無)에서 창조된다.

이 마술의 뿌리는 16세기 영국 금세공업자들의 탐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이 맡겨둔 금화 중 동시에 찾으러 오는 비율이 고작 10% 남짓이라는 점을 간파한 금세공업자들은 금고에 없는 금화를 마음대로 대출해주며 이자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현대 금융의 근간이 된 '부분지급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의 시초다.

오늘날 은행은 지급준비율(한국의 경우 평균 3.5% 내외)만 남겨두고 나머지 돈을 합법적으로 대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 100억 원이 예금되면, 은행은 수십억, 수백억 원의 대출을 연쇄적으로 발생시키며 통화량을 수 배에서 수십 배로 불린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신용창조(Credit Creation)’라 부른다. 우리가 쓰는 돈의 대다수는 조폐공사가 찍어낸 ‘통화’가 아니라, 은행이 대출 장부를 기록하며 만들어낸 ‘빚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빚 보존의 법칙'과 파산의 숙명

이 시스템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애초에 이자(Interest)라는 돈은 발행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간단한 우화를 생각해보자.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섬에 중앙은행과 시민 A, B 단 세 명만 살고 있다. 중앙은행이 최초로 만 원을 발행해 시민 A에게 연 5%의 이자로 빌려줬다. 1년 뒤 시민 A는 이자를 포함해 10,500원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섬 전체에 존재하는 돈은 오직 만 원뿐이다. 시민 A가 아무리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 섬의 모든 돈을 쥐어짜도 500원이라는 이자는 물리적으로 갚을 수 없다. 이 500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다시 돈을 찍어내고, 시민 B가 대출을 받아 섬에 유통해야만 한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잔인한 '빚 보존의 법칙'이 성립한다. 내가 대출을 받아 원금과 이자를 무사히 상환했다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출받아 시중에 유통한 돈을 내가 경쟁을 통해 빼앗아 왔음을 의미한다. 즉,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더 큰 빚을 져야만 하고, 시스템 내의 총부채가 줄어들거나 통화 공급이 멈추는 순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고 경제 사정에 어두운 계층부터 연쇄적으로 파산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무한 경쟁과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이유는, 타인의 돈을 빼앗지 않으면 내가 파산하는 구조적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금융의 사계절: 인플레이션의 축제와 디플레이션의 겨울

빚으로 쌓아 올린 신용 가치는 영원할 수 없다. 통화량이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자산 가격이 폭등하며 모두가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개인은 빚을 내어 집과 차를 산다. 그러나 이는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진짜 호황이 아니라, 부채로 일궈낸 ‘착시 현상’이다.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가 주창한 50~60년 주기의 장기 순환 주기(콘드라티예프 파동)에 따라 필연적으로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의 겨울이 찾아온다.

팽창하던 통화량이 정점에 도달해 더 이상 빚을 낼 사람이 없어지면 순식간에 돈의 흐름이 막힌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자산 시장의 거품은 처참하게 터진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그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확히 이 메커니즘으로 발생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대출을 권했던 탐욕의 대가는 전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과 대량 실업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종이 조각이 된 달러와 베일에 싸인 FRB

이 복잡한 먹이사슬의 정점에는 세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이후 달러는 금과 연동되어 세계 신용의 중심에 섰으나, 1971년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제 폐지(닉슨 쇼크) 이후 달러는 금이라는 족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초법적 권력을 쥐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진실은 세계 경제의 운전대를 잡고 달러를 찍어내는 연방준비제도(FRB)가 미국의 정부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FRB는 미국 연방 전화번호부에서 정부 관공서가 아닌 민간 기업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몇몇 거대 금융 자본과 민간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간 법인’일 뿐이다. 결국 전 세계 인류는 거대 금융 자본이 설계한 부채 시스템 안에서 그들이 결정하는 금리와 통화 정책에 따라 지갑의 두께가 결정되는 기묘한 운명을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빚이고, 빚은 곧 돈이다." 이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 금융 자본이 쳐놓은 덫에서 허우적대는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은행은 끊임없이 소비를 미덕이라 부르고, 지금 당장 빚을 내어 풍요를 누리라고 유혹한다. 그래야만 이 위태로운 부채의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아야 한다. 지금이 인플레이션의 끝자락인지, 혹은 가혹한 디플레이션의 한복판인지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시스템의 본질을 깨닫고 부채의 유혹 앞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는 것, 그것만이 거대한 금융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영원한 겨울은 없다. 혹독한 디플레이션의 계절을 단단하게 버텨낸 자만이, 다시 찾아올 자본주의의 봄에 진정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