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주식에서 채권까지, 아무도 당신의 재산을 걱정해주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빼앗기는 당신에게: 금융 자본주의의 친절한 포식자들

어느 날 문득, 주거래 은행 창구 직원의 유난히 친절한 미소에 이끌려 서명했던 펀드가 반토막이 나곤 합니다. 평생 모은 노후 자금이 저축은행의 ‘후순위’라는 낯선 단어 뒤에 숨어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하지요. 우리는 이 비극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의 운을 탓하거나, "원금 손실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수많은 서류 조항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는 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합니다. 과연 그것이 당신의 잘못된 선택이나 단순한 불운 때문이었을까요?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일찍이 은행을 두고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뺏는 곳"이라 일갈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금융 시스템은 결코 우리의 재산을 걱정해 주는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설계된 정보의 비대칭성 속에서 소비자의 무지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친절한 포식자’에 가깝습니다.

 

친절한 은행원의 서랍 속에 감춰진 KPI

우리는 은행을 ‘내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이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금융 자본주의 세상에서 은행은 예대마진과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영리 기업일 뿐입니다. 창구 직원이 당신에게 건네는 "요즘 가장 잘나가는 상품"이라는 추천사 속에는 치명적인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이 특정 상품을 권하는 이유는 대개 하나입니다. 본사에서 내려온 KPI(핵심성과지표) 점수가 높거나, 높은 판매 수수료가 책정된 프로모션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산의 안정성보다 직원의 인사고과와 은행의 비이자수익이 우선시되는 구조, 이것이 바로 금융 시장을 지배하는 ‘대리인 문제(Agent Problem)’의 실체입니다.

위험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움직입니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이었던 '후순위 채권'은 은행의 자산 건전성 지표(BIS 비율)를 높이기 위한 꼼수로 활용되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법률 용어에 무지했던 소맹 투자자들의 눈물로 치러졌습니다.

 

펀드와 보험, ‘보이지 않는 비용’의 늪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을 충실히 따랐다는 펀드 투자자들도 보이지 않는 칼날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산운용보고서 깊숙이 숨겨진 ‘매매 회전율’의 진실을 아는 소비자는 드뭅니다.

미국의 대형 펀드들이 포트폴리오를 1년에 한 번 갈아엎을 때(회전율 100%), 국내 일부 대형 펀드들은 수천 %의 회전율을 기록하곤 합니다. 펀드 매니저들이 주식을 수십 번씩 사고팔 때마다 발생하는 매매 수수료와 거래세는 투자자가 모르는 사이 기준가를 갉아먹습니다. 이는 자산운용사가 계열 증권사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고객의 돈으로 ‘단타 매매’를 일삼는 구조적 모순입니다.

‘보장과 투자’를 동시에 잡는다는 변핵보험 역시 감미로운 덫입니다. 소비자가 내는 보험료에서 10% 안팎의 무시무시한 사업비와 수수료가 먼저 공제된 뒤, 남은 부스러기 같은 돈만 펀드에 투입됩니다. 시작부터 마이너스 10%의 수익률을 안고 출발하는 경주에서 물가상승률을 이기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투자자’가 아닌 ‘소비자’로 생존하는 법

2008년 전 세계를 파산 위기로 몰고 갔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썩은 사과(부실 대출)를 성한 사과와 섞어 화려한 포장지(파생상품)로 감싸 팔았던 구조화 금융의 탐욕이 부른 참극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위험천만한 파생상품 시장에서 대한민국은 매년 거래량 세계 상위권을 다투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일확천금의 망상과 금융회사의 화려한 마케팅에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곤 합니다.

이제 프레임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금융 시장의 거대한 고래들과 대등하게 대치하는 '투자자'가 아닙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듯 금융 상품을 구매하는 '금융 소비자'일 뿐입니다. 마트에서 유통기한과 성분표를 꼼꼼히 따지듯, 금융 창구에서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이 상품이 정확히 어디에 투자되는지, 내가 내는 숨은 수수료는 얼마인지, 비가 올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제도적으로는 금융회사로부터 어떠한 수수료도 받지 않고 오직 고객의 자문료로만 운영되는 '독립재무자문(IFA)' 제도가 뿌리내려야 이 기형적인 판매 생태계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기 전까지,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결국 고도화된 금융 이해력(FQ)뿐입니다.

불량 식품은 한 사람의 배탈을 부르지만, 불량 금융 상품은 온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사회악입니다. 금융 자본주의라는 거친 바다에서 무지(無知)는 죄가 아니라, 곧 파산입니다. 더 이상 그들의 친절한 미소에 우산을 맡기지 마십시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당신의 우산을 쥐어 줄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