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FOMO)와 폭탄 돌리기: AI 광풍의 시대, 우리는 왜 또 '바보 이론'을 반복하는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주식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성인 3명 중 1명이 주식 계좌를 보유한 개인 투자자 1,500만 명 시대, 코스피가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우며 자본시장은 외형적 팽창을 이루었다. 자본시장은 기업에는 모험 자본을 공급하고, 투자자에게는 자산 증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주의의 정수(精髓)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향신료 무역의 막대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주식을 발행한 이래, 금융자본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이라는 화려한 겉포장 뒤에 숨겨진 개인 투자자들의 실적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시장이 유례없는 초강세장을 기록했던 코로나19 시기에도 개인 투자자의 42%, 특히 신규 진입자의 무려 60%가 손실을 입었다. 지수는 폭등하는데 왜 내 계좌만 녹아내리는가? 이 역설의 해답은 금융공학 공식이 아닌,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비합리적 심리 편향에 있다.
계좌를 파괴하는 두 가지 주범: 과도한 거래와 처분 효과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인간이 이익보다 '손실'에 2~2.5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손실 회피 성향(Loss Aversion)'을 규명했다. 이 심리적 오류가 주식시장에서 발현된 형태가 바로 '처분 효과(Disposition Effect)'다.
개인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통장에 불이 켜지면 손실을 확정 지을 때 따르는 고통을 피하고자 무모한 '물타기'를 감행하며 버틴다. 그러다 주가가 기적적으로 원금을 회복하는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안도감에 서둘러 주식을 매도(익절)해 버린다. 반면, 주가가 하락하는 쭉정이 종목은 계좌에 그대로 방치한다. 결국 상승장에서도 기대 이익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고점 대비 급락의 리스크만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관과 외국인 대비 5배가 넘는 과도한 거래 회전율(단타 매매)이 결합하면, 미미해 보이던 위탁 매매 수수료와 거래세가 복리로 누적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계좌를 잠식한다. 빈번한 매매는 시장의 노이즈를 시그널로 오인하게 만드는 '과잉 확신(Overconfidence)'의 결과물일 뿐이다.
'오징어 게임'이 된 레버리지와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30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극단적인 투기 성향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자산운용사들은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행태를 두고 '오징어 게임 주식 시장'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미국 증시에서 한국인이 차지하는 지분은 0.2%에 불과하지만, 고배율 레버리지(2~3배) ETF 거래 비중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인 30~40%를 상회한다.
근로 소득만으로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조차 마련할 수 없다는 공포감, 즉 사다리가 끊어진 세대의 '생존을 위한 도박'이 금융시장에서 초고위험 베팅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 사실은 냉혹하다. 레버리지 ETF는 일일 수익률의 배수를 추종하기 때문에, 지수가 횡보하거나 변동성이 커질 경우 '음의 복리 효과(Volatility Drag)'로 인해 자산이 자동으로 소멸한다. 실제로 해외 레버리지/인버스 ETF에 투자한 이들의 평균 손실률이 33%에 달한다는 통계는 시장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는 오만이 가져온 참혹한 대가다.
국내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촉매제다. 지배주주 중심의 기업 거버넌스, 핵심 사업부를 빼내어 중복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물적분할), 취약한 주주 환원율은 한국 증시를 '장기 보유하면 손해 보는 시장'으로 낙인찍었다. 신뢰를 잃은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장기 가치 투자가 아닌 단기 차익 거래와 해외 고위험 상품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버블의 연금술: 신기술 내러티브와 '더 큰 바보 이론'
198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버논 스미스(Vernon Smith) 교수의 모의 투자 실험은 버블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든 참가자에게 주식의 내재 가치가 라운드가 지날수록 감가상각되어 결국 제로(0)가 된다는 완전한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어김없이 폭발적인 가격 버블이 형성되었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이 주식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사더라도, "나보다 더 비싼 가격에 사줄 '더 큰 바보(The Greater Fool)'가 다음에 존재할 것"이라는 투기적 확신 때문이다. 이 폭탄 돌리기는 매수자와 매수자의 호가 공백이 생기는 순간 멈추며, 버블의 결말은 언제나 거래 절벽과 대량의 하한가 투매라는 파국으로 끝이 난다.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의 거품은 언제나 인류를 진보시키는 대전환기적 '신기수(General Purpose Technology)'의 등장과 궤를 같이했다. 1840년대 영국의 철도 광풍, 1920년대 미국의 전력화 혁명,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이 그러했다. 1999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새롬기술 신화'를 기억하는가. 인터넷 무료 국제전화라는 매혹적인 '스토리(Narrative)' 하나로 주가는 5개월 만에 150배 폭등하며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기적을 연출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AI) 광풍 역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거대 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데이터 센터를 짓고 있지만, 정작 이 인프라가 기업의 실질적인 매출(Number)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철도망이나 광통신망 구축이 그랬듯 최소 10년에서 15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 기술의 비전은 진짜일지언정, 현재 시장이 부여한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에는 수많은 '더 큰 바보'들의 탐욕이 투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버블의 교훈: 기술에는 환호하되, 가격에는 냉정하라
철도 버블이 수많은 투자자를 파산시켰음에도 영국 전역에 깔린 철도망이 산업혁명의 동력이 되었고, 닷컴 버블이 붕괴했음에도 살아남은 아마존(Amazon)이 인류의 삶을 바꿨듯, AI 혁명 역시 인류를 진보시킬 것이다. 기술의 성공이 투자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닷컴 버블 당시 최고점 대비 90% 이상 폭락했던 아마존의 주식을 버블이 완전히 꺼진 2001년 초에 '헐값'으로 매수해 장기 보유한 이들만이 진짜 부(富)를 거머쥐었다.
아마추어 투자자가 광기 어린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Sit out)'이다. 탐욕이 지배하는 랠리에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막차를 타는 대신, 시장의 거품이 붕괴한 뒤 널려 있는 진짜 우량주를 바겐세일 가격에 줍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손절매(Stop-loss) 원칙을 기계적으로 수립하여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리스크 수용 능력(Risk Tolerance)에 맞게 자산을 배분하는 것만이 자본시장이라는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신기술의 서사(Narrative)에 환호하되, 가격 창 앞에서는 얼음처럼 냉정함을 유지하라. 그것이 수백 년간 금융사가 우리에게 피로써 전하는 엄중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