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삶을 집어삼킨 제도적 덫, ‘부동산 담보신탁’ 사기를 고발한다
‘세상이 사죄하라’는 피해자들의 절규가 다시 거리로 터져 나왔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새로운 변종 사기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이번에는 ‘신탁(Trust)’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신종 전월세 사기다.
충북 보은과 증평, 그리고 전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비극은 평범한 서민들이 법과 제도의 허점 속에서 어떻게 합법적으로 전재산을 탈취당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생 모은 보증금 2,600만 원을 날리고 말을 잃은 20대 청년, 사기의 스트레스로 뇌출혈을 일으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까지, 이들은 결코 부주의해서 당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방치한 교묘한 ‘제도적 덫’에 걸려든 것이다.
‘믿고 맡긴다’는 신탁, 사기꾼들의 강력한 무기가 되다
부동산 담보신탁은 본래 집주인이 신탁회사에 소유권을 넘기고, 신탁회사가 발행한 증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합법적인 금융 기법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근저당권 설정보다 리스크가 적고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어 선호된다.
문제는 이 제도가 사기꾼들의 손에 들어갔을 때, 정보가 부족한 임차인을 완벽하게 속이는 ‘흉기’로 돌변한다는 점이다. 대외적인 소유권이 신탁회사로 이전되었기 때문에, 원래 집주인(위탁자)은 신탁사의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을 맺을 권한이 없다. 그러나 사기꾼들은 여전히 자신이 실소유주인 것처럼 속여 임차인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심지어 한 집에 최대 7명의 세입자와 중복 계약을 맺는 대담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 계약의 무서운 진실은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단 1%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신탁사의 동의 없는 계약은 법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이다. 결국 집주인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건물이 공매로 넘어가자,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불법 점유자’라는 낙인이 찍혀 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도 모자라,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무단 점유 손해배상(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까지 당하는 비극이 속출하고 있다.
정보의 깜깜이, 그리고 책임 회피가 키운 재난
어떻게 공인중개사들조차 속아 넘어갈 정도로 대규모 사기가 가능했을까? 원인은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에 있다. 부동산 거래 시 누구나 확인하는 등기부 등본에는 ‘신탁’이라는 단어와 신탁사 이름만 덩그러니 기재될 뿐, 상세한 대출 규모나 임대 권한 제한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이를 확인하려면 수십 장에 달하는 복잡한 ‘신탁 원부’를 봐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신탁 원부는 직접 등기소에 대면으로 찾아가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불편한 비밀’이었다. 제도가 공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던 셈이다. 뒤늦게 인터넷 발급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일반 서민은 물론 어설픈 중개사들조차 그 복잡한 권리 관계 문서를 완벽히 해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대기업 신탁회사가 관리하니 더 안전하다”는 기만적인 감언이설이 통용됐다.
이 거대한 사기 플랜 속에서 이득을 본 이들은 명확하다. 허위 계약으로 보증금을 편취한 사기꾼, 대출을 실행해 이자 수익을 올린 금융기관, 그리고 수수료를 챙긴 신탁회사다. 이 거대한 금융 생태계 속에서 손해를 입지 않은 구조를 만든 주체들이 정작 사건이 터지자 “우리는 몰랐다”, “우리 승인 없는 계약이니 법대로 하겠다”며 임차인들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다. 수개월 동안 지역 사회에 플랜카드가 도배되며 불법 임대가 판을 칠 때, 소유권자인 신탁회사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방조이자 직무유기다.
이제는 제도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때
부동산 신탁 사기는 주로 1~3천만 원 단위의 소액 전월세 보증금을 타깃으로 삼는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금액일지 몰라도, 농사를 짓는 시골 노인이나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들에게는 삶의 전부이자 생존의 기반이다. 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를 방치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이 비극을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계약 미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첫째, 부동산 등기부 등본상에 신탁 원부의 핵심 내용(임대 권한 여부 및 대출 잔액)이 의무적으로 연동되어 표기되도록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둘째, 신탁 부동산 임대차 계약 시 신탁사의 서면 동의서 첨부를 법적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한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전세사기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신탁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탁사와 금융기관의 관리·감독 소홀 책임을 물어 공매 절차를 유예하고 실질적인 피해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완전한 제도를 방치해서 벌어진 재난은 사회적 재난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는 진화하는 범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더 이상 서민들의 피눈물로 금융기관과 사기꾼들의 배를 불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대적인 법 개정과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