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1억 원을 할인해 드립니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 - 추적60분

 

1억 할인도 통하지 않는 시대, 불 꺼진 지방 아파트가 던지는 경고음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현재 거대한 '양극화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서울 강남의 신축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을 뚫고 고공행진을 벌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대형 건설사 간판을 달고도 '1억 원 파격 할인'이라는 눈물의 처분마저 외면받는 지방의 유령 아파트들이 늘고 있습니다.

 

1억대 할인과 리츠의 등장, 그리고 '영끌족'의 눈물

지방 미분양 물량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준공 후 미분양(악성 미분양)'은 이미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건설사와 시행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분양가를 1억 원 가까이 낮추거나, 아파트 통째로 CR리츠(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에 넘겨 전세 임대로 돌리는 고육지책을 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기존 분양자들의 고통입니다.

높은 분양가를 고스란히 지불하고 입주한 초기 '영끌족'들은 졸지에 자산 가치 폭락과 임대 아파트 전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옆집은 2억 원대 전세로 들어오는데, 자신은 6억 원에 분양받아 매달 수백만 원의 대출 이자를 독박 쓰는 구조. 이 기막힌 현실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진짜 범인은 '행정의 예측 실패'와 '일자리 미스매치'

규제가 불러온 묻지마 공급 과잉
2020년 전후 서울과 수도권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이자, 대형 건설사들은 세제와 규제가 느슨한 지방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대구시가 난개발을 막기 위해 상업지역 내 용적률을 제한하는 조례를 개정하자, 규제를 피하려는 시행사들의 '막차 타기' 사업 승인 신청이 폭주했습니다. 지방정부는 공급 과잉을 예측하면서도 요식 행위를 갖춘 민간의 신청을 막지 못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집을 살 '사람'의 소멸
아파트를 지어 가구 수를 늘려도, 그 집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경제활동인구(3040 세대)는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돈과 일자리가 서울에 몰리다 보니 젊은 층은 지방을 떠나고, 고령 인구만 남는 악순환이 지속됩니다. 반면, 대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이 재개되며 미분양이 빠르게 소진되는 평택의 사례는 부동산의 본질이 결국 '일자리'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공공기관 이전이라는 착시, '금요 상경 버스'가 말해주는 것

정부는 그동안 균형 발전을 외치며 공공기관을 지방 혁신도시로 대거 이전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이주하기보다는 혼자 내려와 오피스텔에 살다가,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정부가 대준 '통근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으로 향하는 직원이 부지기수입니다. 주말이면 유령 도시로 변하는 혁신도시의 상권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습니다. 인구 유입의 착시 효과만 있었을 뿐, 지역 경제를 살릴 실질적인 '정주 인구'는 늘지 않은 것입니다.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출구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입니다. 정부가 LH를 통해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원가의 80% 수준으로 깎아 사려는 공공과 빚이라도 갚으려면 더 받아야 하는 건설사 간의 단가 밀당으로 실적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건설사의 부도는 하도급 중장비 작업자들의 임금 체불과 생계 파탄으로 이어지며 서민 경제의 실핏줄을 막고 있습니다.

이제는 땜질식 유동성 공급이나 단순한 가격 할인 유도 같은 1차원적 처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정성 있는 대기업·산업 유치: 공공기관 몇 개를 옮기는 것보다,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민간 대기업과 유망 산업 단지를 지방에 안착시키는 규제 완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철저한 수요 예측 기반의 인허가 통제: 무조건 짓고 보자는 식의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강력한 필터링 시스템과 권한 이양이 필요합니다.

지방의 불 꺼진 아파트는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넘어,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재앙의 전조등입니다. 건설업계의 위기가 국가 경제 전반의 연쇄 부도로 번지기 전에, 대한민국 국토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다시 조립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