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그들만의 리그, 누구를 위한 청약제도인가 - 추적60분

 

‘로또’와 ‘금수저’ 사이, 우리 청약 제도가 잃어버린 것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자산 증식의 가장 확실한 수단이자, 신분 상승의 사다리이며, 때로는 삶의 성패를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977년 도입 이후 주거 안정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주택 청약 제도’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제도는 집 없는 서민의 희망이 되기보다, 특정 계층과 세대만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이자 ‘불평등의 온상’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로또 청약’이 부른 도덕적 해이와 편법의 진화

강남 3구를 비롯한 수도권 인기 지역의 청약 경쟁률이 수천 대 일에 육박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당첨만 되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 이른바 ‘안전 마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한정된 '로또'를 쥐기 위해 자행되는 불법과 탈법의 수준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데 있다.

위장과 조작의 일상화: 위장 전입, 위장 미혼, 자격 조작 등 가점을 높이기 위한 편법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 전 의원을 지낸 고위 공직자 가문조차 자녀의 위장 미혼 및 부양가족 허위 등록 의혹으로 청약 가점을 챙겼다는 논란은 이 제도의 도덕적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화된 브로커 시장: 청약 통장 불법 거래는 이제 단순한 음성 거래를 넘어 조직적인 ‘탈법 컨설팅’으로 진화했다. 브로커들은 만점 통장에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얹어 매입한 뒤, 전매 제한과 실거주 의무를 피해 가는 편법을 ‘합법의 테두리’라 포장하며 법망을 비웃고 있다. 처벌 수위(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가 범죄로 얻는 수십억 원의 기대 이익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으로 번진 땜질식 정책과 ‘금수저 특공’의 모순

정부는 출산율 제고와 청년층 배려라는 명목 하에 신혼부부, 신생아 특례 등 특별공급(특공) 비중을 대폭 확대해 왔다. 그러나 이 땜질식 계정은 또 다른 불평등과 세대 갈등을 낳았다.

소외당하는 4050 무주택 중년층: 수십 년간 착실하게 청약 통장을 부으며 4인 가족 만점(69점)을 만든 중년층은 허탈감에 빠졌다. 일반 공급 물량 자체가 대폭 줄어들면서, 평생 제도를 믿고 기다린 대가가 ‘영구 낙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직하게 기다린 대가가 배제라면 청약은 사기"라며 절규한다.

‘부의 대물림’으로 변질된 특별공급: 그렇다면 청년층은 행복한가? 자산은 적지만 소득이 높은 이른바 ‘대기업·전문직 맞벌이’ 청년들은 소득 기준에 걸려 특공에서 배제되고, 일반 가점제에서도 밀려 청약 통장을 해지하고 있다. 반면, 강남권 신혼부부 특공 당첨자의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해보면 절반 이상이 부모로부터 수억에서 10억 원 이상을 증여·상속받은 이른바 ‘낮은 소득의 금수저’들이다. 소득은 낮지만 부모의 자산이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되면서, 청약이 합법적인 부의 대물림 통로로 전락한 셈이다.

 

규제의 역설: 당첨되어도 지옥인 서민들

정부의 널뛰는 부동산 대책과 대출 규제 역시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고 있다. 가난한 서민이 다자녀 특공 등으로 꿈에 그리던 청약에 당첨되어도, 갑작스러운 주택담보대출 한도 제한 규제가 적용되면 수억 원의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부업체나 제4금융권으로 내몰리는 비극이 발생한다. 투기 세력을 잡겠다는 규제가 정작 보호받아야 할 실거주 서민의 목을 죄는 ‘규제의 역설’이다.

반대로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당첨을 포기한 자리에 자산가들이 '줍줍(무순위 청약)'으로 진입해 손쉽게 시세 차익을 거두는 현상은 청약 시장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모든 사람을 위한 리그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부동산을 통해 거둬들인 개발 이익이나 세금은 적어도 다시 부동산에 재투자되어 주거 안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49년을 맞이한 청약 제도가 본연의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식 조정을 멈추고 제도를 원점에서부터 전면 개편해야 한다.
복잡한 공급 체계의 단순화: 공공과 민간 청약을 통합하고, 누더기가 된 특별공급 전형을 신혼부부와 다자녀 등 핵심 계층 중심으로 단순화해야 한다.
공정한 물량 배분: 일반 공급 물량 중 일정 비율은 장기 무주택자를 위한 납입 금액 순으로, 나머지는 추첨제로 과감히 분류하여 세대 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불법 행위의 무관용 원칙 적용: 청약 통장 매매 및 부정 청약에 대해 이익의 수배를 환수하는 벌금형이나 강력한 형사 처벌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투기 수요의 유입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채권입찰제 등 이익 환수 및 재투자: 과도한 분양가 상한제로 발생하는 '로또 차익'을 국가가 채권입찰제 등을 통해 환수하고, 이 재원을 공공 아파트 건설이나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투명하게 재투자해야 한다.

정직한 노력과 기다림이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 내 집 마련의 꿈이 로또 한 장에 저당 잡히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청약 제도의 정상화는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넘어, 우리 사회의 깨어진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