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노후 파산, 죽지 못해 산다 - 추적60분

 

16살부터 하루도 쉬지 않은 그들은 왜 회생법원으로 갔나: '노후 파산'이라는 사회적 형벌

국제대학원 고령사회연구실 객원전문가 / 경제학 박사

"나는 사실 16살부터 하루도 쉰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내 앞으로 된 돈이 1원도 없어요." 최근 방영된 KBS <추적 60분>에서 평생을 기계가공 엔지니어로 일하다 끝내 법원에서 재파산 선고를 받은 예순아홉의 대리운전 기사가 던진 독백이다. 이 고백은 단순히 개인의 무능이나 투자 실패에 따른 참회록이 아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가장 성실하게 일해온 세대에게 선고하고 있는 잔인한 '구조적 형벌'의 기록이다.

현재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 10명 중 무려 4~5명이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이들은 과거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으며, 밤낮없이 땀 흘려 가정을 일구었던 우리네 부모들이다. 평생을 성실함으로 무장했던 이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왜 법원의 '파산 면책 심사대'에 줄을 서게 되었는지, 그 구조적 모순을 세 가지 경제·사회학적 프레임으로 짚어보아야 한다.

 

첫째, '소득 크레바스(Crevasse)'와 '임계장'의 비극

선진 복지국가의 은퇴 공식은 간단하다. 주된 일자리에서 '법정 정년'을 맞이함과 동시에, 곧바로 국가가 지급하는 '공적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통해 안정적인 노후로 이행(Transition)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 시장에는 거대한 빙하의 균열인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기)'가 존재한다.

기업 현장에서 밀려나는 실질 은퇴 연령은 평균 50대 초중반인 반면, 국민연금을 수급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만 63~65세이다. 이 10년 가까운 공백기 동안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다시 노동 시장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이때 이들이 마주하는 일자리는 이른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 장년)'이라 불리는 극도로 불안정한 저임금 단순 노무직(청소, 경비, 단기 건설 일용직)이다.

65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60%가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국가적 경기 침체나 건설 경기 하강 국면에서 가장 먼저 해고되는 '핵심 취약 계층'이다. 노동 공급의 한계 연령을 넘어섰음에도 일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야 하는 비정부적 고용 구조가 노인들을 파산의 절벽으로 떠밀고 있다.

 

둘째, 세계 1위 빈곤율의 주범, '부실한 공적 사회안전망'

한국의 노인 소득 빈곤율은 39.7%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서구 선진국 노인들의 소득 중 공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70~80%에 달하는 반면, 대한민국 노인은 고작 30%에 불과하다. 1988년 도입되어 1999년에야 전 국민으로 확대된 국민연금 제도의 역사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 수급자들의 월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약 69만 원이다. 이는 1인 가구 최저생계비(154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적 연금이 노후 생계 보장이라는 본연의 '소득 대체율' 기능을 상실하자, 노인들은 부족한 자금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생계형 자영업(치킨집, 카페, 편의점)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영업자 37%가 고령층인 과당 경쟁 구조 속에서, 코로나19 같은 거시경제적 타격이 오면 이들은 자산 처분과 동시에 수억 원의 채무를 지고 파산 선고를 받게 되는 '자영업의 잔혹사'를 반복하고 있다.

 

셋째, 부양의 덫에 걸린 '마처세대'와 '의료비 파산'

지금의 6070 세대는 역사상 가장 가혹한 세대적 의무를 지고 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 이른바 '마처세대'이다. 이들은 90대 노모의 치매 간병비와 의료비를 홀로 감당하는 동시에, 극심한 취업난으로 독립하지 못한 30대 자녀의 학비와 카드 빚까지 대신 짊어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미래(노후 자금)를 전부 갈아 넣은 대가는 처참하다.

여기에 고령층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 요인인 '의료비 리스크'가 결합된다. 뇌경색, 암, 심혈관 질환 등 중증 질환이 발병하는 순간, 소득이 끊긴 상태에서 수천만 원의 의료비 지출은 고스란히 사채와 신용대출 등 '악성 채무'로 이어진다. 법원에서 면책을 받아도 근본적인 가난과 질병의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니, 사기 범죄(노후 자금을 불려 주겠다는 다단계 등)에 취약해져 결국 '재파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복지 제도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시급하다

2040년이 되면 대한민국 인구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된다. <추적 60분>이 보여준 탑골공원의 새벽 무료 급식소 줄서기와 고시원 방 한 칸에서 신음하는 노인 파산의 풍경은 머지않은 미래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이제 노인 빈곤 문제를 개인의 게으름이나 준비 부족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방임을 끝내야 한다. 법정 정년 연장이나 고령자 직무 다변화를 통한 '소득 공백기' 축소, 기초연금의 실질적 급여 수준 현실화, 노인 간병 및 중증 질환에 대한 '의료 안전망' 강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회생법원은 밀려드는 노인들로 마비될 것이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한 대가가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파산 통지서'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남은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