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제5부: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Ⅰ. 대공황의 충격과 케인스의 혁명

1929년,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파국을 맞이합니다. 아담 스미스 이후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며, 시장은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고전 경제학의 믿음이 처참히 깨진 것입니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기업이 도산하는 현상을 두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새로운 진단을 내놓습니다.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케인스는 경제가 스스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다고 말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그의 유명한 말처럼, 그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공공사업을 벌이고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주면, 그들이 돈을 쓰고, 그 소비가 기업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시경제학'의 시작이자, 국가가 경제의 주도권을 쥐게 된 '수정 자본주의'의 탄생입니다.

Ⅱ. 정부의 실패와 하이에크의 반격

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스 주의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 파동과 함께 찾아온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은 케인스 이론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고 복지를 늘리는 과정에서 관료주의가 비대해지고, 기업의 창의성이 저하되는 '정부의 실패'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입니다. 그는 정부의 계획 경제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노예의 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이에크는 인간의 지식은 파편화되어 있어 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없으며, 오직 시장의 가격 체계만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능케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이어지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세금 감면,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가 경제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습니다.

Ⅲ. 신자유주의의 그늘과 금융의 탐욕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세계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규제가 풀린 금융 자본은 실물 경제보다 훨씬 거대해졌고, 고위험 투자를 반복하며 몸집을 불렸습니다. 결국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시장은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의 자유를 외치던 금융 기관들은 파산 위기 앞에서 국가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이들을 살려냈습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중산층은 몰락했으며 빈부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습니다. 자본주의가 소수의 자본가만을 위한 시스템으로 변질되었다는 자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Ⅳ. 21세기 국가의 역할: 인간을 위한 경제학

다큐멘터리는 질문합니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케인스는 국가가 시장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고, 하이에크는 국가가 시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사상의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케인스는 실업의 고통을 해결하려 했고,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지키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 선택이 아닙니다. 금융 자본의 탐욕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와 동시에, 경제 주체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토양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정책의 목적지가 '숫자'가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장의 열매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낙수 효과'는 환상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국가는 낙오된 이들을 보듬는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부의 공정한 배분을 유도하며, 교육과 복지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소비자가 돈이 없으면 시장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Ⅴ. 따뜻한 자본주의를 향한 여정

자본주의는 완벽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고장 나고 수리가 필요한 기계와 같습니다. 그 기계를 수리하는 주체는 국가이며, 수리의 목적은 모든 국민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잘 사는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꿈꿨던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케인스가 지키려 했던 '일자리가 있는 삶', 하이에크가 수호하려 했던 '개인의 자유'가 조화를 이룰 때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해집니다.

결국 국가는 시장의 심판이자 보호자로서, 자본의 냉혹함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99%의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국가에 던져야 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며, 국가는 정책을 통해 그 답을 증명해내야 합니다.